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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 역사공원

풍류와 문학의 공간으로써 정사를 돌보는 장소였던 태화루는 울산과 운명을 함께 해 왔으며, 임진왜란 전‧후 멸실되었으나 시민의 오랜 염원으로 2014년, 4월 건립되었습니다.

태화루 역사공원 전경 이미지1
태화루 역사공원 전경 이미지2
태화루 역사공원 전경 이미지3
태화루 역사공원 전경 이미지4
태화루 역사공원 전경 이미지5

주소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로 300

  • 규모지상2층, 대지면적, 10,138㎡, 연면적 731㎡(태화루 379.53㎡, 휴게문화동 351.48㎡)
  • 구조한식목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용도문화관광 공간 및 시민 휴식처

관람시간

  • 동절기 : 09:00~20:00
  • 하절기 : 09:00~21:00

태화루 시작

고려시대의 기록인 일연‘삼국유사(三國遺事)’와 김극기 ‘대화루시서’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이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울산에 태화사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태화루는 태화사 경내에 조성된 누각으로 황룡연이 내려다보이는 태화강가의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태화루가 지어질 당시 신라는 백제의 침입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국사찰인 태화사를 울산에 건린한 것은 국가적으로 울산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울산의 수도 서라벌로 가는 길목이자 외국과 교류하는 국제항으로서 번창하였고, 이와 함께 태화루는 울산을 대표하는 누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태화루의 유물

태화사가 태화루가 있던 옛 터는 2010년 4월 21일부터 5월 19일까지 울산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조사 결과 신라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 3기와 고려시대 담장1곳, 조선시대수혈유구 2기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습니다.
건물 터는 대부분 훼손되고 일부만 남아있어 전체적인 구조를 알수 없으나 발굴조사에서 확보된 연화문 수막새와 관련 자료를 통해 황룡연 언덕 일원이 태화루 터임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 태화루 전경
  • 태화루 조감도
  • 태화강고수부지에서 용검수
  • 태화루 부지 출토 막새류

태화루의 시문

수많은 문인이 태화루의 빼어난 풍경과 정취를 시로 표현했습니다.

전해지는 시문은 107편 정도이며 당시 울산의 아름다움과 문학적 깊이를 보여줍니다.

태화루

붉은 난간은 관도에 닿아있고
절 문 밖에는 푸른 파도가 넘실대네

수레들은 시끄럽게 돌아가는 행차를 전송하고
노래 소리 풍악 소리는 날마다 요란하네

이슬비 내리니 나무에서 꽃이 피고
봄바람 불어보니 술독엔 술이 가득.

고금의 이별 한에 시는 달빛 으스름하고
어부들 노래소리는 앞 마을에서 들려오네.

태화루

위치

일반버스
운행버스
114, 213, 215, 219, 236, 246, 417, 422, 432, 438, 462, 472, 518, 523, 533, 713, 715, 723, 728, 734, 735, 754, 763, 918, 1114, 1224, 5003
울산공항
213, 215, 246, 422, 432, 472, 1224
태화강역
417, 713, 723, 728, 734, 754, 763